카테고리 없음

행복을 찾아서

jookwanlee 2017. 12. 11. 21:38

행복을 찾아서

 

여느 사람들과 같이 나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60년 가까이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직접 체험도 하고 듣기도하고 보기도 하면서 찾아왔다고 할 것인데,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행복이란 바로 영적 성장(spiritual growth)에 따라 저절로 생기는 부산물이란 생각에 도달하였다.

 

이제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하여 4대 성인들을 만나고 알아가며 체험하는 영적 만족감의 그 근본에 있다 하겠다. 여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허락한 제반 자연이 주는 수많은 선물들에서도 큰 행복을 얻는다. 또 세종대왕이나 링컨등 위대한 인물들과 접하고 감동하고 배우면서도 큰 기쁨을 가지곤 한다. 또 나아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필두로 수많은 동서양의 예술작품, 문학작품, 철학들과 만나며 얻는 크나큰 희열은 빼놓을 수 없다. 또 가깝게는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깊은 나눔은 인간관계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기타 또 다양하게 있겠으나 주요한 것만 나열해 보았다.

 

그런데 이들 모두에서 그 가장 중심에는 나의 마음의 성숙과 그에 따른 감동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즉 마음을 갈고 닦아 나가야만 참 행복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긴 세월이 걸린 이런 나의 행복관을 크게 뒷받침하는 모윤숙 작가가 오래전 쓴 행복의 얼굴이란 글을 보았는데, 아래에서 그중에 감동적인 부분을 인용하고 의역도하며 음미하면서 더 큰 행복의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모윤숙 작가의 생각을 아래에 적는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찾아 배회한다. 그러나 우리는 왕왕 우리가 찾아놓은 행복에서 얼마나 배신을 당해왔던가. 인간은 길고 먼 여로에서 행복을 더듬고 찾아가며 살아간다.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다 다르듯이 행복에 대한 인식도 다를 것이다. 행복은 꿈이다. 내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희망이다.

 

아픔과 절망의 동굴을 지나서야 발견되는 성숙의 즐거움, 때 묻지 않은 그대로의 영혼과 마주앉아 듣는 이야기, 그것은 돈이나 탐욕을 위한 것이 아닌 정신의 요람 그 속에서 들리는 하늘의 소리일 것이며 행복일 것이다. 그런 경지라 흔히 혼자 앉아있는 순간, 잎사귀들과 꽃들의 밀어를 삼가 들으며 저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이 아니면 잘 오질 않는다. 혼자 조용히 앉았다는 그 자체는 세상이 일러 고독하니 가련하니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혼자라는 그 자체가 가지는 멋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글쎄, 그런 이유에선지 모르나 나는 혼자 뜰에 앉아 나를 생각하고 가족친지들과 벗들을 생각하며 자연에서 오는 천지조화를 느끼는 때가 좋다. 그윽한 마음의 길이 보이고 거기서 들려오는 생명의 언어를 들을 때 나는 순간이나마 행복을 느낀다. 산길을 걸으며 둘레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 풀 냄새에 마음을 설레며 걷는 순간, 그런 때처럼 나에게 좋은 때는 없다. 먼 향수에 눈시울이 젖어오는 그 순수한 감상, 그 생각의 부드러움들, 추억이거나 현실이거나 모두가 진실한 얼굴로 마주서 온다. 또 조용한 서재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성경 사서오경 고전작품들을 접할 때는 나는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움이 없다.

 

마음 바탕은 행복이 거주할 터전이 된다. 신앙과 진리의 탐구로 이루어 놓은 단단한 마음이 우리가 행복을 길로 나감에 꼭 필요하다. 확신과 의지 그에 따른 판단이 흐려지면 그 위에 세워지는 모든 행복의 요건들은 흔들리고 말며 마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마음의 순수함과 확고함 그것으로 바탕을 삼지 않고는 행복이 오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친구와 애인을 만나보았다. 그러나 거기서 순수한 인간성이나 애정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모두를 포기 했던 것 같다. 무서운 불행이 나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부터 얻는 행복은 대단한 선물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마음 바탕이 세속적 욕망에 오염되어 돈 지위 권력 등으로 애정을 팔고 선전하는 마음들이 너무 많다. 순수한 애정은 신의 선물이나, 세상에는 애정 아닌 것이 애정의 탈을 쓰고 사람을 속이고 불행하게 하는 수가 참 많다. 그래서 마음은 찢기고 상처투성이요, 저 자신마저도 상실한다.

 

행복의 관점은 보는 눈에 따라 그 성숙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행복은 상대적이라기보다는 저 자신이 어떻게 수양하고 파악하고 조절하는가에 좌우 된다고 본다.

 

인간은 영혼의 존재로 너무 떠들썩하거나 형식적이고 공식적인데서 또는 전통이나 인습적인 어떤 사회여건에 추종함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다. 행복은 결국 항상 우리의 희망을 내포한 신의 계시, 암시, 비전을 접하여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고독을 초월하면서 행복의 얼굴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한다. 가장 가까운 일상의 생활 속의 작은 일들에서도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고요한 정신으로 명상을 하며 깨닫는 기쁨도 또한 대단히 클 것이다. 또한 햇빛과 그늘 사이로 지나는 바람을 만났을 때, 이슬방울 흔들리는 풀잎의 웃음을 쳐다볼 때, 가슴은 행복에 젖어온다


 [2017.12.11.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