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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해방(解放)의 길

jookwanlee 2014. 4. 18. 15:26

해방(解放)의 길

 

불가(佛家)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말하듯이 인생길 가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고 삶속에서 승리의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길은 과연 어떤 길일까?

 

승리의 해방으로 나가는 길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래(傳來)의 입장은 아마도 성심(聖心)을 개발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현실의 삶속에서 덕(德)과 인(仁)을 닦고 기르며 실천해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에 관해서 1653년에 백강 이경여 선생이 효종대왕에게 다음과 같이 풀어 설명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 뜻은 만사의 근본이고 뉘우침은 착한 것을 회복하는 기틀인데,~ 그 발단인 이른바 성심(聖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개 본심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이 때문에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본이 이미 굳어져서 어느 것을 취하여도 본원(本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下略 ~

 

인(仁)을 숙련하는 공부가 어찌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데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를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 데에 오르겠습니까. 당 태종(唐太宗)이 일찍이 ‘임금의 한 마음은 공격받는 것이 많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여 그 하나만 받아들이는 날이면 위망(危亡)이 따른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그 자성(資性)이 밝고 트여 이 마음이 희미한 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인(聖人)의 극치(極治)라는 것도 결국은 이 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 下略 ~

 

아울러 성학(聖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덕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아울러 강학(講學)은 장구(章句)나 구독(口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인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 下略 ~ ~ 효종 4년(1653 계사) 7월 2일(을축) 영중추부사 이경여(李敬輿)가 올린 재변을 이겨내는데 힘써야할 21항의 상차문 중에서

 

다른 한편으로, 중동지역에서 태동(胎動)하여 전래된 예수교에서 말하는 인간 해방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 안에있는 기쁨과 평안과 영원한 생명의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 하겠는데, 이에 대한 성경(Bible)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본래 죄(罪)의 억압 가운데 살았던 진노의 자녀였는데, 우리의 힘으로는 이 죄(罪)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이기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서 그를 믿는 인류에게 구원(救援)의 길을 열었다.

 

죄를 이기시고 승리한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죄인들을 초청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바로 죄의 짐을 뜻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죄 아래 있는 우리들이다. 우리가 예수께로 나아가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고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즉 예수를 구주(救主)로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죄의 억압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St. Paul)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장2절)고 말하였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자유함을 누리듯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예수 안에만 참 생명이 있다. 성령(Holy Spirit)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를 이기고 사망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은 그의 ‘참회록’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예수를 통한 인류구원을 찬양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 능력이 크시며 지혜가 무궁하시다. 인간이 죽음을 짊어지고 다니며 죄악의 흔적을 나타내며 다닐지라도 당신을 찬양하기를 원하는 것은 당신이 인간을 지으셨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속죄(贖罪)의 제물(祭物)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당신과 예수 안에서 쉼(rest)을 얻기까지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고 했다.

 

이는“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그가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시편 92:4, 표준새번역)”는 다윗왕(King David)의 시귀(詩句)에서 그 극치(極致)에 이른다.

 

2014. 4.18. 이 주 관

 

첨부파일 해방의 길.hwp

출처 : 완산이씨 밀성군 백강공
글쓴이 : 이주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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