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독서할 것인가?
근래에 “조선명문가 독서법(‘다음생각’ 발행)”이란 책이 발간되었다.
1. “조선명문가의 독서법” 요약
최근 카이스트영재들이 줄줄이 자살을 하여 충격을 주었다. 카이스트의 영재들이 안정을 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실패를 모르던 영재들은 무한경쟁에서 뒤처질 때 더 아파할 수 있다. 하지만 최우수 집단도 경쟁은 불가피하다. 조선시대도 영재들은 극심한 경쟁을 했다. 그들의 공부법을 보면 오늘의 영재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있다.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에는 조선 영재들의 공부 자세와 방법이 잘 소개돼 있다. 조선 영재들은 죽음을 넘어선 공부를 했다. 그래서 큰 업적을 이뤘고, 명문가를 형성했다. 조선 명문가 영재들이 지금의 영재들에게도 크게 시사하는 독서의 특징을 보자.
하나. 독서는 죽음을 넘어섰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인 이경여 후손과 경종 때 영의정인 김창집 후손은 사약을 눈앞에 놓고도 대대로 독서 유언을 남겼다. 그 결과 이경여 후손은 3대 연속 문형에 올랐다.
이경여의 아들인 이민서, 손자인 이관명, 증손자인 이휘지가 3대 연속으로 대제학을 지냈다. 김창집 후손은 조선 중후기 사상과 정치를 주도했다. 사화로 죽음을 앞둔 김수항은 "독서하는 아이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아들 김창집에게 전했다. 김창집은 아들 김제겸과 손자에게, 김제겸은 다시 아들 김달행에게 '독서훈'을 남겼다.
둘, 절망의 상황에서도 책을 읽었다. 경종 때 좌의정 이이명 집안은 정쟁에서 져, 남자는 모두 죽고 여자는 노비가 돼 귀양을 간다. 이 때 이이명의 열다섯 살 손자며느리는 귀양지에서 먹을거리를 구하는 한편 우울증에 걸린 시어머니 시할머니에게 책을 읽어 드린다. 이 같은 생활은 4년 동안 계속된다.
셋, 타인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명종 때 정승을 16년 간 지낸 상진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에는 과거에 낙제하고 상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찌 대장부가 시험관 한 사람의 눈으로 결정한 것을 두고 걱정하고 즐거워하겠는가. 이런 연연함의 폐단이 차츰 벼슬도 잃을까 근심하는 데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릇이 이 정도에 머물면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넷, 난리가 나도 책을 읽었다. 선조 때 명신인 유성룡은 아들에게 준 글에서 "비록 세상이 어지럽고 위태로워도 남자라면 공부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임진왜란 등으로 앞날이 극히 불투명하다 해도 글공부를 그만 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다섯, 체면도 필요 없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 균은 "만 권의 책이 있는 곳이 지상낙원"이라며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서나 책을 읽었다. 효종의 장인인 장유는 "남들이 소라고 부르든, 말이라고 부르든 책만 읽는 벌레가 되련다.”며 체면도 벗어던지고 책만 읽었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들은 젊은 시절부터 독서에 파묻혀 살았다. 그 결과 현종 때 인물인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전'을 무려 1억1만3천 번을 읽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선비들이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책을 읽기 위해 체력을 키웠다. 3대 연속 장원급제자를 배출한 현종 때 문신인 이민적은 달리기로 교육을 시켰다. 책 속의 글을 보자. "이민적은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식사를 다 했으면 청사를 계속 뛰어라." 그는 다시 달리기를 한 아들에게 말했다. '소화가 다 되었으면 책을 읽어라."
모든 선비가 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성종 때 선비인 최충성은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해 병을 얻었고, 결국 34세의 짧은 생애를 살고 만다. 산속의 절을 찾아다니며 책을 읽은 그는 호를 ‘산당서객’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부와 이동으로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기에 피로가 계속 누적됐다. 몸은 삐쩍 말랐고, 얼굴은 새카맣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건강을 관리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학자 최충성은 후세인들에게 공부에 앞서 운동을 권유하고 있다.
2. 독서에 대한 생각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의 실제 주인공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이 당대의 문호 괴테를 감동시켰고 그것이 베토벤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폴레옹이 장군으로서 대문호와 천재 음악가에게 그렇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 나폴레옹이 말안장 위에서도 독서를 하였던 독서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영웅인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성공에 대하여 말하기를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매일 독서를 하고 주말이면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 빌 게이츠는 디지털 전도사격인 처지에서 스스로 “컴퓨터가 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컴퓨터에 빠져 책 읽기를 등한시하고 있다. 이 나라의 장래가 염려스러워지는 모습이다. 뉴턴, 에디슨, 아인슈타인 모두가 독서광이었다. 깊은 독서 없이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신앙이 깊어지려면 성경읽기에 폭넓은 독서가 더하여져야 한다. 본래 교회 전통에는 ‘거룩한 독서(Lexio Divina)’가 경건생활을 위한 훈련의 한 축이 되어 왔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폭 넓은 독서가 뒷받침 되어져야 한다. 폭 넓은 독서를 통한 넓은 지적 세계가 뒷받침 되지 않은 채로 성경만을 많이 읽게 될 경우 자칫하면 편견에 빠져들기 쉽다. 그리고 영적 상상력이 결핍되기 쉽고 배타적인 독선에 젖어들기 쉽다.
참 진리 길을 인도하는 좋은 독서를 할 필요에 대하여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전도서(Ecclesiastes, 12장 12절)에 지혜의 대명사로 불리는 솔로몬 왕은 지나치게 많은 독서와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심신을 괴롭게 할 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깊이 생각하여야 할 대목으로 생각된다.
독서를 하는 목적이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갈고 닦아 예수그리스도의 성품, 세종대왕이나 옛적 성현들의 인격을 배우고 닮아가서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함에 있어야 할 것이다. 오로지 세속적인 출세지향의 독서는 오히려 본인은 물론 주변에도 많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가 있다.
‘논어’에는 군자는 비록 독서의 량은 적더라도 자연의 섭리를 잘 관찰하고 배워 이에 따르면 군자다운 인격과 행실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독서는 유익하며, 공자의 말처럼 배움은 즐거운 것이나 먼저 그 목적을 바르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011.10.21. 이 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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