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유익해야한다
신앙생활은 유익해야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凡事)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요한3서 1장 2절).
신앙생활에는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으뜸 목표는 영혼의 구원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목표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소망을 가짐에 머물지를 않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구실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가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풍성하여지고 나아가 이웃에 무언가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이비 신앙이나 이단 종파들이 해로운 것은 그들에게는 신앙생활에서 얻는 유익함이 없고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이 가져오는 유익함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신앙생활로 인하여 자신이 몸과 마음이 건강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의 건강에는 일상의 생활에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끼고 누리는 삶이 포함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신앙생활로 인하여 불행하다면 그런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될 터이요 그 신앙은 그릇된 신앙이라고 할 것이다.
둘째는 가정의 질서와 평화이다. 진정한 평화에는 질서가 포함된다. 성경은 하나님을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알려준다. 질서를 잃으면 평화가 깨어지고 평화를 잃으면 질서가 망가진다. 올바른 신앙은 가정에 질서와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성경에 첫 번째 가정이었던 에덴동산에 ‘선악과’라는 질서의 기준이 있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십계명’이란 질서의 계명이 있었다. 그러기에 참 진리가 터를 잡은 교회공동체에는 질서와 평화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에는 영적인 질서와 조화가 있으며 나아가 가족들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된다.
셋째는 국가와 사회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 까지 나아가야 한다. 종교는 어떤 종교이든 개개인의 영혼구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종교가 거기에 머물기만 하여서는 바른 종교라 할 수 없다. 개인의 영혼구원에 바탕을 두고 국가와 사회의 경세제민(經世濟民)에 까지 나아가야 한다. 신앙생활과 교회공동체로 인하여 자유민주주의적인 열린사회가 이룩되고 건전한 산업과 문화를 일으킴에 정신적인 기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가 사회에 도덕성을 높여주고 복지사회를 건설하여 나감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들 속에 올바른 정신세계를 이루어 감으로서 건전하고 창조적인 문화·예술을 창출하여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전체주의·공산주의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거짓되고 억압적이며 타락한 문화·예술에 경도(傾倒)되는 것과 나아가 사회나 국가의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결코 건전한 신앙이 될 수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비록 신앙은 아니지만 건전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제도로서 오늘날 오히려 많은 무리를 빗어 특히 우리나라에 큰 해악(害惡)을 끼친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 평화상과 문학상은 반드시 새롭게 태어나든지 아니면 폐지되어야 한다.
한편 막스 웨버(Max Weber)가 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란 책이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말하기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 많고, 종교인들 중에서도 기독교 신도들 특히 개신교 신도들이 성공에 이른 비율이 높다고 하여 신앙생활의 유익함을 말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특히 개신교 신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자유민주주의와 창조적이며 건전한 문화·예술과 세계경제와 평화를 크게 꽃피운 사례에서 잘 알 수가 있다.
2024.10.20. 素澹 <참조: 김진홍 목사, ‘신앙생활의 생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