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를 꿈꾸며
하늘나라를 꿈꾸며
송(宋)나라 때 동파(東坡)소식蘇軾)은 1082년 7월16일 밤 황주로 유배되어간 몸으로 친구 양세창이 그를 방문하자 같이 적벽강(赤壁江)에서 뱃놀이를 하였는데, 이 때 지은 글이 “전적벽부(前赤壁賦)”이다.
이 글 중에 작가가 신선(神仙)의 세계를 동경하여 신선처럼 속세를 떠나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싶은 심정을 묘사하고 있으니,『한 조각 작은 배를 가는대로 내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며 가니[縱一葦之所如(종일위지소여) 凌萬頃之茫然(능만경지망연)] 넓고도 넓도다! 허공에 기대어 바람을 어거(馭車)하는 것 같아 그 머물 곳을 알지 못하고[浩浩乎(호호호) 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여빙허어풍이불지기소지)] 훨훨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더라![飄飄乎(표포호) 如遺世獨立(여유세독립) 羽化而登仙(우화이등선)]』라고 하였다.
인간은 영혼을 지닌 존재로 누구나 속세를 넘어 영원한 세계인 하늘나라를 동경하게 되어있는데, 소동파 역시 신선들이 사는 하늘나라를 몹시 흠모(欽慕)하고 꿈을 꾸고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평범한 보통의 인생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을 각기 독특하게 창조하시어 각기 뛰어난 삶을 살도록 하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나름 인정받기를 원하며 이것은 우리들의 건전한 정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성경 역대상 1장에서 9장까지에 육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거되는 가계(家系)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4장 9-10절에서는 야베스(Jabez)에 대하여 적고 있다.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야베스 한사람만을 가려 특별하게 인정하신 것이다. 성경을 통틀어 여기서만 야베스를 기록하고 있으나, 야베스는 육백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영광을 받은 것이다. 9절에 기록되기를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자”라고 했는데 왜 하나님은 그를 이렇게 남다른 존귀한 삶을 살도록 하셨을까?
야베스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地境)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하니 주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이다.
이 야베스의 삶에는 우리들이 뛰어난 삶을 살기위한 세 가지 원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첫째는 야베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둘은 하나님께 정직, 성실함과 그리고 순종이다. 그의 친구들이 평범한 삶에 만족하였으나, 야베스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합니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보다 크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원합니다.”고 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하지 아니하고 더 성장하고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가기를 원하였다. 야베스는 위대한 꿈을 가졌으며 그의 삶에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런 꿈이 없이 지내므로 많은 성취를 기대할 수 없으며 그저 단지 생존해 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꿈꾸기를 그친다면 이미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며, 새 목표들을 세워가지 않는다면 성장은 멈추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지평(地平)이 확장되면 될수록 우리들은 더욱 정서적으로도 건강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계속 성장하여 가도록 하신 것으로 더 뻗어가고 발전하여 가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인생에 각기 목적을 갖고 계시며 우리 인생 성공의 관건은 이를 발견하고 이에 집중하여 가는 것이라 할 것이다.
“제힘으로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닌 두려워하는 것이며,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나 스스로는 그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도움과 복 주심으로 나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다.
한편 노인이 된 갈렙(Caleb)은 아직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꿈을 45년 동안 간직해오고 있었다. 여호수아 14장 10-12절에 갈렙이 기도하기를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山地)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였다. 갈렙은 늙었다고 하여 그의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손에는 연금증서를 한손에는 의치(義齒)를 들고도 그의 아득한 먼 시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셨던 산지를 얻고자 하였다.
헬렌 켈러(Helen A Keller)는 말하기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지만 비전이 없는 것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고 했다. 우리의 꿈은 야베스와 갈렙과 같이 이를 위해 기도하고 끈질기게 붙들고 나아가며 또 때로는 하나님 섭리 안에서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이를 이루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꿈을 이루는 것, 특히 순례자(巡禮者)의 길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하늘나라의 문에 이름은 힘들고 긴 투쟁이다. 그러나 바로 그 오르막 길 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성도(聖徒)들의 순례의 여정에서 고난과 어려움 다음에 쉬운 평원을 주심으로 지친 영혼에게 영적 생동감과 위로를 주신다. 그러나 쉽고 평안한 멋진 평원은 곧 끝이 난다. 왜냐하면 쉬운 길로 계속 가게 되면 영적진보가 없을 뿐 아니라, 조그마한 어려움을 만나도 쉽게 실망하고 순례의 길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쉽고 편안한 평원이 곧 끝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번연(John Bunyan)의 “천로역정”중에서>.
2024. 7.24.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