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건강해야 산다
정신이 건강해야 산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대표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정선거 증거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권력형 비리 사건들, 넘쳐나는 가짜뉴스와 악의적인 선동들, 기초질서를 안 지켜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들 등등··· 이들을 대하면서 우리 국민정신의 황폐화와 타락, 이기심의 만연, 도덕성의 마비 등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국민들의 정신을 건강하게 순화시키고 인격을 가다듬어 가도록 하는 일들이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 개개인의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바르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근본이 될 것이다. 국민생활의 저변부터의 정신문화의 개혁이 절실한 것이다.
일찍이 회재 이언적(李彦迪) 선생은 ‘관심(觀心)’이란 시로 마음의 중요성을 노래하였다.
공산중야정관금(空山中夜整冠襟) 빈산 한밤중에 홀로 옷깃 바로하고 앉았으니
일점청등일편심(一點靑燈一片心) 한점 푸른 등불은 한 조각 마음과 같구나
본체사종월처험(本體巳從月處驗) 본체야 세상에서 이미 경험 하였으니
진원경향정중심(眞源更向靜中尋) 진리의 근원을 고요한 가운데서 찾으리라
한밤중에 고요한 산당(山堂)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청등(靑燈)을 보며, 이미 세상에서 경험한 마음의 본체 외에 천성(天性)의 진원(眞源)을 성찰하며 진리의 근본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삶의 본체로서의 마음과 캄캄한 밤을 환희 밝혀주는 한밤중의 청등을 연결하고 있는데, 성인(聖人)과 우자(愚者)의 분기점이라는 것이 다만 한 가닥 마음의 기미(機微) 라는 것을 깨달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1653년(효종4년) 7월2일 백강 이경여(李敬與) 선생이 임금에게 올린 상차문(上箚文)에는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있다.
“대개 본심(本心)이 지켜지지 않으면 덥지 않아도 답답하고 춥지 않아도 떨리며 미워할 것이 없어도 노엽고 좋아할 것이 없어도 기쁜 법이니,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로 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말하는 대근본(大根本)은 이것을 뜻합니다. 이를 함양하는 방도는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잊지 말아서 보존해 마지 않아야합니다.”(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대왕은 마음을 살피고 보존하는 공부는 오직 ‘신독(愼獨)’이라는 두 글자에 달려 있다면서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 절실히 반성하고 부지런히 힘써서 선단(善端, 착한단서)이 일어나는 것을 없애버리거나 악념(惡念)이 발동하는 것을 자라나게 하는 일이 없게 하여야한다.”고 하였다.
신독은 혼자 있을 때 몸가짐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는 대학(大學) 전육장(傳六粧)에 “소위 그 뜻이 성실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속임이 없는 것이니 ··· 고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나온 교훈이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천덕(天德)·왕도(王道)는 그 요체가 홀로 있을 때에 삼가는데 있을 뿐이다 고 하였습니다.(程子以爲: 天德 王道, 其要只在槿獨)’ 홀로 있을 때에 삼가지 않아서 유암(幽暗)하고 은미(隱微)한 데에 문득 간단(間斷)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날로 고명(高明)한데에 오르겠습니까? 聖人의 극치(極致)라는 것도 결국은 이길 외에 따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위의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 중에서).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영어 속담에 “고통의 대가를 치르지 아니하고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란 말이 있다. 모든 위대한 것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르고 얻어지며 마음과 정신의 정화도 마찬가지이다.
마태복음 2장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태어나신 마을 베들레헴 주위에 두 살 아래 아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날 이 본문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곤 하였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께서 태어나신 일로 왜 죄 없는 아기들이 죽게 되었을까? 죽어가는 아기들도 살리실 예수로 인하여 어떻게 숱한 아기들이 죽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계셨을까?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다른 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위대한 역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희생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죽으면 자신들이 이미 저지른 죄가 많으니 그 죄 값으로 죽은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죄를 사해줄 효력이 없다. 그래서 죄 없는 아기들, 두 살이 안 되는 순수하고 맑은 아기들이 희생당함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의 밑거름이 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 들어 우리 국민들의 정신세계가 너무나 황폐하고 타락하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는 희생하고 고통을 스스로 감수함으로 보다 맑고 밝은 세계를 이루어 나감에 자신을 헌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내공(內功)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때다.
“형제들아 우리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서 신도들을 향한 고백이다. 이 사도바울의 고백을 거울삼아 우리도 진리만을 바라보고 국민정신문화를 개혁해 나가자. 그리하면 살길이 열린다. 자유민주주의 건국정신, 선진사회에서 이미 입증된 청교도정신, 우리민족의 우수성인 세종대왕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들 모든 생활영역의 저변부터 개혁해 나가자.
2023.12.29.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