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外柔內剛)의 마음으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마음으로
······························ 진리 안에서 온화하고 친절하며 용인(容忍)하면서 지내자
사람은 누구나 온전하지는 못하므로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실망을 주기도 하고 내 생각과 다른 잘못된 주장을 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다만 우리가 할 일은 나날이 정진(精進)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인(聖人)들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성숙하여 가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진리 안에서 온화하고 친절하며 상대를 최대한으로 용인(容忍)하면서 지내자.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5절)”라고 말한 바 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을 따뜻이 맞아 주고 그의 의견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로마서 14장 1절). 행복은 아직 나 보다 인격적인 성숙이 덜 이루어진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서 찾아든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장 1-2절). 온유하다는 것은 누가 그대를 실망시킬 때 비판하기 보다는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도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남들을 비판·비난하기를 즐기는 위선자들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였다.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모든 성현(聖賢)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나 사람은 선천적으로 죄성(罪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주장을 꺾지는 않되 일단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니 이것이 온유함이다. 상대를 꺾어 이기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면 상대와 싸우지 말아야 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怒)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장 1절). 온유함이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화평하게 다루는 것으로 눈으로는 마주 응시하지 않고 손잡고 가는 것이다. 부부간에 서로 똑같다면 한쪽은 필요 없어지며,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니, 우리에게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야고보서 3장 16-17절).
비록 우리가 악인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며 다만 비본질적인 곳에서 다른 것으로 서로 박애심(博愛心)을 가져야 한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디모데후서 2장 24-25절).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도 위선자들과 진리를 모독하는 자들에게는 크게 화를 내시며 배척하셨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하신 것같이 우리가 이웃들에게 대할 때 우리는 온유한 사람으로 행복해 지는 것이다. 온유함은 통제된 힘이니 악의 근원에 대해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이를 물리친다. 이는 바로 외유내강의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2023.12.25. 素淡 (참조 : Rick Warren, 'Controlling My Rea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