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울 수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세상 풍조는 나를 비우면 모두 빼앗긴다고 말하지만, 하늘의 섭리는 나를 비울 때 비로소 내 것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병도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우리 인생에는 ‘분명한 내 것’처럼 보이지만 비워야할 것이 있다. 특히 세상의 탐욕으로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이 그러하다.
오랫동안 애쓰며 쌓아온 명예, 움켜진 재물, 일구어낸 인간관계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생존의 위험까지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버릴 때 우리는 진정한 쉼과 평안과 내면에서 샘솟는 즐거움을 체험할 수가 있다. 우리역사에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그의 절필시(絶筆詩)에서 읊었듯이 ‘사생임피창(死生任彼蒼)’ 죽 죽고 사는 것을 저 하늘에 맡길 때 비로소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린다.
영혼의 세계에서 비움은 채움의 전제조건이다. 나의 세상 탐욕을 비워내는 진정한 이유는 하나님의 신령(神靈)한 것으로 대신 채우기 위한 것이다. 세상의 것은 유한하고 비본질적이나 하나님의 것은 영원하고 본질적이다. 사람은 그 영혼이 평안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야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내 욕구와 자아와 계획을 하나님께 위탁할 때에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내안에 부으시고 나로 하나님 안에서 충만한 사람으로 세우셔서 내가 차원 높은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그를 신뢰하면 그가 이루실 것이다.” (시편 37편 5절).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에 온전히 맡기고 따를 때에 비로소 흠 없는 자비와 사랑과 용서의 사람이 될 수 있고 참된 행복도 이때에 따라온다. 이런 차원 높은 인격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가 없다. 어머니가 뱃속의 아기로부터 가지는 놀라운 느낌이 어머니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겠는가? 그것은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위탁하고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에게 밀려오는 심리적인 중압감, 풀기 힘든 난제, 견디기 어려운 환경, 비난과 조롱, 많은 과제와 도전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등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자! 이것들을 모두 내 힘으로만 감당하고 힘든 인생길을 걷다보면 더욱 일이 꼬여 무너져 내리기 쉽고 평안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기도 어려워진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의 말씀을 배워 나를 비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면 자연히 스트레스 받을 일들은 물러가게 된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가 있으며 다가올 죽음까지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善)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2022. 1. 8. 素淡
신임사화로 죽임의 화(禍)를 당하면서도 태연하게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어 영조대왕 옹립(擁立)에 핵심적 역할을 한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절명시(絶命詩)를 소개한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慟) 외로운 신하가 오늘도 애통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네
한포재공은 누명(陋名)을 쓰고 참수형을 당하였지만 영조·정조의 부흥의 시대를 열어 영원히 추앙받는 충신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 비결은 죽고 사는 것을 저 하늘에 맡기고 의로운 길을 걸어간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하늘의 뜻을 따라 의로운 길을 걸어감으로 죽음 앞에 당당하고 태연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