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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兒欲遂平生志 (남아욕수평생지)

jookwanlee 2022. 10. 7. 11:13

男兒欲遂平生志 (남아욕수평생지)

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鍾粟 (부가불용매량전 서중자유천종속)
安居不用架高堂 書中自有黃金屋 (안거불용가고당 서중자유황금옥)
出門莫恨無人隨 書中車馬多如簇 (출문막한무인소 서중거마다여족)
娶妻莫恨無良媒 書中有女顔如玉 (취처막한무량매 서중유녀안여옥)
男兒欲遂平生志 六經勤向窓前讀 (남아욕수평생지 육경근향창전독)

부자가 되려고 좋은 밭을 사지 마라. 글 가운데 본디 많은 곡식이 있다.
거처를 편히 하려고 큰 집을 짓지 마라. 글 가운데 본디 황금으로 된 집이 있다.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 마라. 글 가운데 수레와 말이 떨기처럼 많다.
장가를 들려는데 좋은 중매가 없다고 한탄 마라. 글 가운데 얼굴이 옥 같은 여자가 있다.
사나이가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육경을 창 앞에 펴놓고 부지런히 읽어라.

<眞倧皇帝勸學文(진종황제권학문), 고문진보 에서>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장인(匠人)들이 공장(工場)에 머물면서 자기 일을 완수하듯, 군자는 배움을 통해서 그 도(道)를 완성한다.(君子學 以致其道)”라고 하였다. <논어(論語) 자장(子張) 7장>

배우기를 멈춘다면 그것은 바로 사실상의 죽음을 의미한다. 인생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성장하여 나갈 때에 비로소 그 인생은 살아있는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배우는 데에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올바른 삶의 자세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학문이란 마음과 인격을 갈고 닦아 덕(德)과 진리(眞理)를 세상에 널리 펴고 실천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런고로 백강 이경여 선생과 한포재 이건명 선생은 임금에게 무엇보다도 학문에 힘써서 덕을 기르고 정사(政事)를 바르게 펴나가기를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권유한 바가 있다.

“군자에게는 그 마음을 바루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잡히고 나면 덥더라도 답답하지 않고 춥더라도 떨리지 않으며 기뻐할 만해야 기뻐하고 노여울 만해야 노여우니, 주자(朱子)가 이른바 대근본(大根本)이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함양하는 방도도 불씨(佛氏)처럼 면벽(面壁)하거나 도가(道家)처럼 청정(淸淨)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발동되기 전에 지키고 발동된 뒤에 살피며 미리 기필하지 말고 잊지도 말아 보존해 마지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밝은 한 조각 마음이 그 속에 거두어져 있어 북돋는 것이 깊고 두터우며 이(理)가 밝고 의(義)가 정(精)하여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기는 것이 잠시도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덕(德)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

이른바 강학(講學)은 반드시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서, 자신에게 돌이켜 의리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비추어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함으로써,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아는 동시에 미리 생각하여 익히 강구하고 평소부터 대책을 세워두어야 합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 효종 4년(1653년) 7월2일 상차문(上箚文)에서>

“예로부터 제왕이 정사를 하는 요체는 강학(講學)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 법연(法筵)을 날마다 여는 것은 덕성(德性)을 함양하고 의리(義理)를 연구하기 위해서이니 조금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 선대왕(숙종)께서 즉위하시던 초기에는 날마다 경연(經筵)에 나가셨고, 또한 조종조(祖宗朝) 이래로 비록 양암(諒闇)에 계시는 중이라도 강학을 급선무로 삼지 않음이 없었으니, 진실로 백성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도는 이를 버리고 다른데서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법강이 오랫동안 폐기되었으니 비록 간혹 소대(召對)하게 하시더라도 성학(聖學)이 어떻게 계속해서 밝은 경지에 이르고, 공부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이로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날마다 유신(儒臣)을 부르시고 강연(講筵)은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만두지 마십시오. 재계(齋戒)하는 날이 되면 그때마다 경전을 토론하고 치도(治道)를 강론하시어 일폭십한(一曝十寒)의 비난이 없도록 하십시오.” <한포재 이건명 선생, 경종1년(1721년) 3월10일 ‘진소회차(陳所懷箚)’에서>

* 주석(註釋) *
1) 양암(諒闇) : 임금이 거상(居喪)할 때의 거처를 말하는데, 보통 제왕의 거상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2) 일폭십한(一曝十寒)의 비난 : 하루쯤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하고, 열흘은 방심하여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왕(王)의 지혜롭지 못함이 이상할 것이 없구나! 비록 천하(天下)에 쉽게 생장(生長)하는 물건이 있더라도 하루 동안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춥게 하면 능히 생장(生長)할 것이 있지 않으니, 내가 임금을 뵘이 또한 드물고, 내가 물러 나오면 임금의 마음을 차갑게 하는 자가 이르나니, 싹이 있은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배움의 근본은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닦아 나가는 데에 있으니 잠언 4장 23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과 성품을 배우고 닮도록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를 닮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律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贖良)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갈라디아서 4장 3-5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토록 돌보시고 축복하신다.

2022. 10. 7. 素淡

논어(論語) 자장(子張) 7장 자하왈백공거사(子夏曰百工居肆)
子夏曰자하왈百工백공이居肆거사하여以成其事이성기사하고君子學군자학하여以致其道이치기도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匠人들이 工場에 있으면서 자기 일을 완수하듯, 군자는 배움을 통해서 그 道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