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초(芝)나 난초(蘭)가 있는 방
지초(芝)나 난초(蘭)가 있는 방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벗을 사귀는데 관한 경계의 말이 있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이 젖는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아도 때때로 물 기운이 옷에 베어 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 마치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이 더럽혀지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때때로 더러운 냄새가 풍겨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친구를 사귈 때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거처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어야 한다.”라고 한 것이다.
또 공자는 말하기를 “착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내 몸이 마치 지초(芝)나 난초(蘭)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다. 그래서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만큼 자기 자신도 그와 같이 변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착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있노라면 마치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다. 그래서 오래 있으면 그 냄새를 자기 자신이 맡을 수 없으리만큼 거기에 동화해 버린다. 주사(朱砂)를 간직한 곳은 저절로 붉어지고 옷(漆)을 간직해 둔 곳은 저절로 검어지게 마련이다.”라고 하였다. <율곡 이이, 격몽요결(擊蒙要訣) 처세장(處世章) 에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자기와 함께 있을 사람 특별히 친구가 될 사람은 신중하게 선택하여야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言行)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그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자신의 친구라고 불렀으며, 그는 이런 친구들을 영생(永生)이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代贖物)로 내어 놓기까지 하였다.
“나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친구로 삼고)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나의 계명을 지킴으로 친구가 되고) 사랑하여라.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 15장 12-15절>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맹자는 “교우(交友)는 나이가 연장인 것과 신분이 귀하다는 것과 유력한 형제가 있다는 것을 끼고 사귀지 않는 것이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의 덕(德)을 사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옆에 끼고 사귀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맹자’ ‘만장’ 하 제3장에서 말하였고, 또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실존적 교제”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순수한 혼(魂)과 혼이 아무런 이권(利權)이나 거래관계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이 알려주듯이 친구사이에는 반드시 신의(信義)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믿음은 서로 같은 진리를 믿고 건전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아 갈 때에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는 인간관계는 결코 참다운 친구관계로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니 경계하여야 한다.
2022. 8. 7.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