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생수의 근원

jookwanlee 2022. 2. 9. 05:32

생수의 근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惡)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生水)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 이니라” (예레미야 2:13)

 

하나님은 스스로를 생수의 근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 삶의 절대적인 원천’이란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이 근원을 상실하면 결국 물을 담지 못하는 웅덩이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버트란트 러셀은 신(神)을 가정하지 않고서 인생의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우리의 근원을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을 논할 수 있을까? 하나님 없이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고로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그럴싸한 삶의 방법을 제시할지라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고 권면했다.

 

나아가 사도 바울은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1-13).

 

바울이 이처럼 자족의 경지에 이른 것은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어떠한 환경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10).

 

그런즉 우리가 세상의 일들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바울처럼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가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풀은 눕지 않는다.

센 바람에도

쓰러질 듯 흔들리고 말면 그뿐

 

나무도 잘 눕지 않는다.

센 바람에도

가지는 흔들려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이들이 눕는다는 것은

생명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끝내 버티어 힘을 다해 일어서는

삶의 원동력을 갖고 있다.

 

이 자연의 원동력으로

풀은 얼어붙은 대지 속에서 싹을 틔우고

나무는 한겨울 찬바람에 잎을 모두 잃어도

앙상한 가지로 버티어 간다.

 

비록 우리는

매일 매일 어둠 한가운데에 우리 삶을 맡기지만

새벽이면 살아나는 태초의 동력,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

 

계절은 속절없이 지나가는데

우리 시간의 조각들을 이 영생(永生)의 나라에 맞추지 않는다면

세월이 우리 삶의 원동력마저 가져가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생수의 근원 하나님을 바라본다.

 

2022. 2. 9.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