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하나님을 향한 영감
모차르트, 하나님을 향한 영감
1. 왜 모차르트에 열광하는가?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년이 되는 해로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연주장에는 모차르트 연주가 끊이지 않았고, 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는 모차르트 관광 상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해에 방영된 NHK-TV에 의하면 1960-70년대까지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은 베토벤 작품이었다고 하며, 그러나 80-90년대에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단연 으뜸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왜 모차르트의 음악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것일까요?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말을 유행시킨 돈 캠벨(Don Campbell)은 모차르트 음악이 미치는 영향력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워싱톤 주의 이민 관리소에서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영어 수업 때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캐나다의 에드먼톤 시에서 보행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모차르트 현악 사중주를 들려주었더니 그 결과 마약 거래 같은 범죄 행위가 줄어들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라우셔 박사는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10분간들은 대학생의 공간지능이 평소보다 8-9점 더 높아진다고 보고했습니다.
왜 많은 음악 중에서 모차르트 음악이 더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모차르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35년의 짧은 인생 중 1/4이 여행이었습니다. 6세부터 시작된 잦은 여행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지원해 주는 주교, 귀족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직장을 얻으려 다녔지만 백수로 있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낭비벽이 심한 콘스탄체와 결혼했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천재적 능력에도 금전적인 곤란으로 힘들게 살았는데, 말년에는 여기저기 구차하게 돈 빌리는 편지를 쓴 것이 지금도 여러 장 남아있다고 합니다.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는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그의 시체가 어디에 묻혔는지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삶의 무게가 그의 음악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그때그때 상황이 음악에 반영됩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음악은 항상 밝음, 경쾌함, 기쁨, 순수함, 투명함으로 특징지어 지지요.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는 언제나 행복한 삶에 취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끊임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살았습니다. 같은 고전파 작곡가 중 유독 모차르트의 멜로디는 사람들의 귀에 착착 달라붙지요. 곧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됩니다. '흥얼흥얼' 그것이 온종일 모차르트가 한 일이라고 합니다. 고열로 의사를 찾았을 때도 그는 그의 멜로디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비엔나의 한 의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입엔 늘 노래가 있었으며, 그 노래는 삶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 주었지요. 그의 노래는 자신 뿐 아니라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며,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 놀라운 효과가 있었습니다. 노래가 음악이 사람의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켜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음악치료(Music Therapy)연구가 한창이지요.
당신의 입에는 어떤 노래가 있는가요? 날씨가 좋을 때, 뭔가 잘 나가고 있을 때, 바라던 일이 성취되었을 때 노래하기는 어렵지 않지요. 그러나 진정한 노래는 어두울 때 부르는 것이며, 고통가운데서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어둠이 밝음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지요.
젊은 다윗은 조국으로부터 쫓겨 다니며 망명생활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 고통의 시간에 놀라운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심령으로 찬양하리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108:1). 다윗은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었지만 노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자신을 점점 밝고, 강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둠에 처했던 이스라엘을 당대 최고 강대국으로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잠시 여러분의 분주한 일손을 놓으시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에서 떠나 보십시오. 푸른 하늘을 보며 10분만 조용히 좋은 곡을 허밍(humming)으로 노래해 보십시오. 예컨대 아래에서 언급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의 주제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에서의 “노예들의 합창”같은 곡 들을 말입니다. 단순할수록 좋으며, 그 노래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 멜로디에 당신의 감정을 실어 여러분의 복잡한 감정과 고통을 날려 보내기기 바랍니다. 그 음악으로 여러분의 품성을 다듬어 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과 성품으로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은 인격을 가다듬어 성숙시키는 능력이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부를 수 있는 당신의 노래가 있는지요? 여러분들도 성가대원이 되어 봉사도 하시고 하나님도 만나며 인격이 성숙하시어 다윗처럼 성공하는 삶으로 향하시기를 바랍니다.
2.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에 부처!
영혼을 일깨우는 시리도록 저미어 오는 소리의 울림이여!
가슴 한가운데 진한 여운을 남기고 애잔하게 사라지는 멜로디의 긴 터치는 신이 쓰신 미학(美學)이 아닌가!
잔잔한 파동으로 다가오는 기쁨은 나를 스치며 깊은 비애(悲哀)의 여운을 남기고 간다.
마치 우리 삶의 즐거움이 그 깊은 곳에 숙명적인 슬픔을 안고서야 다가오듯이!
모차르트는 우리 인생들이 죄(罪)로 인하여 사망이란 슬픔의 종착역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암시(暗示)하고 있으니,
세상은 안목(眼目)의 정욕(情慾)으로 우릴 유혹하나 하나님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슬픔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도다.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라 했는데, 여기 모차르트는 우리의 본향(本鄕)이요 소망인 하나님 나라를 일깨우고 있음이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차르트란 아름다움의 화신(化身)을 선물하셨음이니,
그의 천상(天上)에서 흐르는 선율 속에는 하나님 주신 은혜의 감동이 가슴을 뛰게 하누나.
속세의 아름다움에도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의 경지(境地)를 주시니, 우리의 소망, 천국의 멜로디는 어떠할지 가늠할 수 없도다.
주님 보이시는 천국이 저희의 이상향(理想鄕)이오니 한없는 자비와 돌보심으로 인도하소서!
3. 모차르트의 레퀴엠
모차르트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수많은 레퀴엠(鎭魂曲)중에도 가장 널리 알려진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며, 이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길을 가는 동안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을 넘어 참 진리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확실히 바라보고자 합니다.
레퀴엠은 그의 작품 중에서 흔치 않은 장중함이 주요한 분위기로 유지되는 드문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곡 자체가 내포하는 의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에 대한 죽음의 예고로 민감해져 있던 모차르트 본인이 너무 심각하게 죽음에 골몰해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곡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차르트 고유의 색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상투스’에서부터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여 지는 순수한 아름다움에의 추구는 `베네딕투스`로 연결되어진다.
이제, 죽음에의 엄중함은 조금씩 희미해져간다.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 섞인 무게는 점차 옅어지고, 서서히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희열로 바뀌어가는 것만 같다.
죽음의 비극적 측면과 대비되는 삶에의 희미한 미련, 죽음으로 향하는 길의 엄중함, 삶의 존재로서의 모든 것을 벗어던져서 획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희열!
그러나 끝내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신비로운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곡의 전체적인 흐름은 `아뉴스 데이`를 거쳐 `콤므니오`에 이르면 다시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레퀴엠은 마무리되고 있다.
어느 순간엔 체념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고요함이 다시 조금씩 부풀어 오르면서 대단원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마냥 전진하여 가는 음악적 긴장감이 도달한 곳은 긍정적이지도 그렇다고 결코 부정적이지도 않다.
초반에서 이미 드러냈던 장중함의 회복이다. 잠시 죽음에의 길이 늦추어졌지만, 이제 다시 가속도가 붙는다. 죽음을 초월한 환희를 향한 것이기보다는, 그것은 드높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 섞인 경이가 아닐까?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풍기는 이 장중한 여운을 대하면서 마틴 로이드 존스( Martin Lloyd Jones)가 쓴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데서 기인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입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사람들은 "무익한 반항"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맞서 싸운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패배와 재난과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화목하여 그분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라고 한 글귀가 생각납니다.
2007. 3.22. (2021.11.29. 수정)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