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기고 나라를 구하자
‘죽음’을 이기고 나라를 구하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 중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먼저 가고 뒤에 가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배운 사람도 가고 못 배운 사람도 가며, 부자도 가고 가난한 자도 가고, 노인도 가고 아이도 간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나 불교나 유교를 따르는 사람이나 무신론자나 모두 다 가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다(전도서 3장2절)’고 했고 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히브리서 9장27절)’고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요한복음 14장1절)’라고 하시면서 죽은 후에 들어갈 다른 세계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1-3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라고 말하면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의 연결 통로이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門)인 것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영원한 천국은 죽음이라는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성도(聖徒)들의 죽음은 세속인들과 달리 본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려면 배추벌레의 모습을 벗어나야한다. 죽음은 마치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거짓과 육욕(肉慾)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죄의 부산물인 질병, 슬픔, 고뇌, 쓰라림, 궁핍, 모순 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은 최고의 두려움으로 그들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그가 주시는 소망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잠자는 것에 비유하셨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아침에 새로운 날을 맞이하듯이 성도는 죽으면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미소를 띠고 이 세상을 떠나갈 수가 있으며 그의 장례식은 ‘영결식(永訣式)’이 아니라 ‘이별식(離別式)’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헤어졌다가 천국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반갑게 만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이런 엄청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罪)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셨기 때문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이 은혜를 힘입어 죽어서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사는 성도들은 온갖 굿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악을 용서하신 은혜를 생각하여 모든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어 이 세상을 정화(淨化)하고 개선한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장31,32절.
이처럼 우리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고 이 세상을 정화시키고 정의 자유 진리가 숨 쉬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독교를 탄압하고 없애려는 것인 인본주의 유물사관(唯物史觀)에서 출발한 공산주의와 그 변종 전체주의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천부인권(天賦人權)이 바로 세계 선진사회에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공산주의와 그 변종 전체주의인 주체사상의 침투로 인해 존폐의 위기로 몰리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어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 항거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개인탐욕주의에 빠져 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침묵 방조하거나 찬동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처럼 교회가 심하게 부패타락하면 지금 북한이 보여주듯이 결국 나라의 장래를 망치고 국민을 고난과 파탄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역사의 교훈인 만큼 이런 타락한 교회는 거부하고 과감히 도려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평신도들은 이제는 떨치고 일어나 분발하여 새롭게 각 가정에서부터 건전한 교회들을 세우고 키워 나가자!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교계를 건전하게 일신(一新)하고 나아가 이 나라를 구하자.
2021. 7.16.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