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타인의 행복

jookwanlee 2021. 4. 6. 10:14

타인의 행복

 

우리는 자주 자신의 일상을 행복할 것 같은 일들로 채우면 채울수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결코 나 혼자만의 기쁨과 행복만으로는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도 없으며,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행복도 찾아오지 않고 권태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행복의 내용이나 그 만족도는 결국 각 사람의 인격적 성숙의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인격이 성숙해 짐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나의 삶을 채우면 채울수록 내 얼굴은 밝아지고 윤기가 흐르며 삶이 풍성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다. 큰 행복으로 나가는 길은 다른 사람의 작은 행복을 빌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래서 중보기도는 중요하다.

 

‘보드랍게 흐르는 물은 한겨울 꽁꽁 얼어붙을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도 바늘하나 꽂을 틈이 없이 옹졸해 질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오늘부터 모두 풀어 버리세요. 마음이 물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흘러야 인생에서 화창하고 향기로운 봄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정스님, 출가 50년 소회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남의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웃의 행복과 즐거움을 내 것으로 삼지 못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옥한음 목사). 심리적으로 타인의 행복에 마음이 닫혀 있으면 자신의 마음 상태는 쪼그라들어가고 자신의 잠재력은 더 이상 열려 나가지 못하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큰 계명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端初)가 열리는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은 분명 안팎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임은 물론이요, 진정한 용기도 남을 위한다는 명분이 주어질 때 자신의 성취감과 행복감에 부합되어서 나오게 된다고 한다. 나라와 국민을 살린다는 명분이 주어질 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경지에 이르러 자신의 생명조차도 기꺼이 바치는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

 

에스더(Esther)가 자기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금식기도를 한 후에 페르샤의 아하수에로(Ahasuerus)왕 앞에 나아갔을 때, 그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말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구약성경 에스더서의 기록은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영조대왕을 옹립하는 과정에서 선왕(숙종대왕)의 유지대로 나라를 세울 수만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가 참형을 당할 때 남긴 절명시(絶命詩)는 긴 여운을 남긴다.

 

허국단심재 (許國丹心在) 나라를 위한 일편단심은 여전하니

사생임피창 (死生任彼蒼) 죽고 사는 것은 저 하늘에 맡기노라

고신금일통 (孤臣今日痛) 외로운 신하가 오늘 애통하나니

무면배선왕 (無面拜先王) 선왕을 뵈올 면목이 없구나!

 

한포재상공은 누명(陋名)을 쓰고 죽임을 당하였지만 영조 정조의 부흥의 시대를 열고 영원히 추앙받는 충신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 비결은 죽고 사는 것을 저 하늘에 맡기고 의로운 길을 걸어간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는 나라를 위한 의로운 길을 걸어감으로 살신성인을 몸으로 실천하니 죽음을 앞두고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할 수가 있었다.

 

2021. 4. 6.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