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던지러 왔노라
불을 던지러 왔노라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함이로라” ~ 누가복음 12장49,51절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진리와 정의를 이루어 나가고자 악한 이 세상에 불을 던지고 싸워나갈 것임을 선언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그저 인기에 영합하고 눈가림하는 가짜평화로 위장하는 일들은 배격하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기독교의 목적은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 뿐 만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진리와 정의와 자유 즉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세워나가는 데에도 있다.
그러나 이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온갖 모함과 협박과 고난 등을 감수해야하는 가시밭길이다. 이 세상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原罪)로 인해 깨어진 세상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지금 미국의 부정선거를 바로잡고자 세계의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고 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이런 입장에 놓인 것 같다. 모쪼록 이 말씀을 상고하며 용기백배하여 세계 정의를 반드시 실현함으로 인류의 인간다운 삶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힘써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처럼 우리가 정의와 진리를 위해 싸워 나가는 길에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어떤 모함과 협박 등을 받더라도 반드시 명심해야할 말씀이 있다.
에베소서 2장8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지적하였다.
악의 세력과 싸울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 근본바탕이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는 심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악에 대한 응징이나 처단이 필요할 때는 추상(秋霜)같이 단호해야 하나 그 바탕에는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푼 심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만이 하나님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알려지기 전 우리 조상님들은 민심(民心)을 바로 천심(天心)이라고 여겨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받아드려 민심을 중히 여길 것을 경계하였다. 민심을 따라 악에는 단호하되 또한 필요할 때는 측은지심(惻隱之心)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길 ~ 백강 이경여 선생
學貴多聞 且闕疑 升高致遠 有前期 (학귀다문 차궐의 승고치원 유전기)
千塗萬轍 同歸一 要把人心 戒入危 (천도만철 동귀일 요파인심 계입위)
사람이 학문을 배우려는 것은 모든 것을 많이 듣고 널리 물어 견문을 넓히는데 있으며 또한 의아한 것을 익히려는데 그 고귀함이 있는 것이니, 이로써 그 배움이 높이 오르고 멀리 이르고자 함에는 먼저 기약함이 있어야만 한다.
사람이 학문하는 한평생의 길은 천 가지 길과 만 가지 수레바퀴가 있으나 그 궁극의 결과는 하나로 돌아오는 법이니, 반드시 뭇사람들의 인심을 옳게 파악해서 위험한 길에 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 나가야 한다.
<이 詩는 문정공 백강 이경여 선생(당시 우의정)이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가 청나라 사형수 감옥인 남관(南舘)에 구속되어 있을 때 지은 詩이다. 이때 청음 김상헌 선생(당시 예조판서)과 지천 최명길 선생(당시 영의정)이 모두 같은 남관 옆방에 구속되어 있었다. 이詩는 지천 최명길 선생의 시집 ‘遲川韻’에서 볼 수 있는데 한학자 白牙 金彰顯(청음 김상헌 선생 후손) 선생이 1980년경에 찾아 해석해 놓은 것을 내가 현대어로 일부 수정하였다. “民心은 天心”이란 말을 뒷받침하는 詩라고 하겠다.>
2020.12.21.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