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자신의 내면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그에게 까지 자라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주어져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어 천국에 들어가고 거기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은 바로 나의 이런 영적인 성장의 정도에 달려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 성숙한 사람이냐?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에베소서 4장14절)라고 하였다.
성경은 이처럼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함을 내려놓고 진리에 대한 넓고 깊은 시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성숙’을 살펴볼 수가 있다. 어떤 성도들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는 성숙한 성도일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하였다.
어린아이의 모습과 일을 버리고 성숙해가는 크리스천은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
첫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특징은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할수록 더욱 잘 속는다. 이단이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모두가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로새서 2장8절)
어린 아이처럼 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만을 위한 삶을 살고, 모든 초점이 그분의 진면목에만 맞춰지길 바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사도행전 20장32절)
미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성경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해석이 정당해야한다. 특히 목회자들은 성경해석에 오류에 빠지거나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성경 말씀은 물론 기본이고 인류역사의 고전들을 두루 섭렵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반드시 실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한다. 그래야만 신도들이 믿고 따를 수 있으며 신도들의 인생을 망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역사의 고전들은 우리가 성경을 독선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것을 막아준다.
둘째,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에베소서 4장15절)
왜 예수님은 겨자씨에 천국을 비유했을까? 우리의 과거가 보잘 것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자라가는 우리들의 그 가능성을 보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에서 보잘 것이 없으나 믿음이 견고한 사람을 들어서 쓰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시기를 좋아하신다. 비록 죄인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다.
우리는 작게 시작했지만 사랑 안에서, 참된 진리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 모든 면에서 성숙해 나가서 매사를 진리로 분별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어야한다.
끝으로, 고상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이룰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만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빌립보서 3장12절)
이 세상의 행태는 스스로 높은 세상적인 목표를 잡고서 자기가 스스로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 삼고 그를 닮아 가고자 나아가는 그 과정 가운데에서 늘 평안과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돌보시기 때문이다. 동행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 또한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2020. 5.22.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