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십만양병론의 교훈

jookwanlee 2019. 12. 1. 13:00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의 교훈

 

“십만양병론”은 율곡 이이 선생과 백강 이경여 선생이 모두 말씀하였으나, 병조판서 율곡 선생의 제안은 묵살 되어 이후 임진왜란으로 치달았고 (율곡전서에서), 병자호란 후 영의정 백강 선생의 제안은 효종대왕이 갑자기 승하하면서 친청파에 휘둘리며 시들었다. 백강 선생은 아울러 제주도에 군마 십만필을 기를 것도 추진하였고 우이동에는 화살용 나무 십만주도 식수 하는 등 다방면으로 국방에 진력하였으나 모두 같이 접히고 말았다 (백강집 서문에서).

 

오늘 우리는 북학 핵무기 개발이란 전례가 없는 엄중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정파적 입장에 따라 이해와 견해가 달라서 이 엄청난 중대사를 그르쳐 돌이킬 수 없는 온 국민의 재앙을 유발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한다.

 

율곡선생의 제안을 율곡전서에서 소개한다. 율곡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1583년에 ‘십만양병론’을 다음과 같이 주창하였다.

“선생이 경연에서 계(啓)하여 가로되 국세가 부진함이 심하니 10년을 지나지 아니하여 마땅히 토붕(土崩)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컨데 미리 10만 병을 양성하여 도성에 2만, 8도에 1만식을 두어 군사에게 호세(戶稅)를 면해 주고 무예를 단련케 하고 6개월씩 번갈아 도성을 수비하다가 변란이 있을 때에는 10만을 합하여 지키게 하는 등 완급의 비(備)를 삼아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루아침에 변이 일어났을 때 훈련되지 아니한 백성을 몰아 싸우게 함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그때는 일이 모두 틀리고 말 것입니다.”(율곡전서 권33 부록1)

그때에 만일 율곡 선생의 경륜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임진왜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율곡 선생의 제안이 받아 들여지기는 커녕 평화로운 시대에 화근을 기른다 하여 탄핵을 받아 그는 사직케 되고 낙향하게 되었다.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지었다는 한 편의 시가 오늘에 와서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사방은 멀리 구름으로 캄캄하기만 한데

중천에 뜬 해는 밝기만 하구나.

외로운 신하의 한 줄기 눈물

한양성을 향하여 뿌리노라.”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과거의 정권이 잘못한 점을 내세워 그들의 시각을 전체적으로 부정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냉철한 객관적 시각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전문적 식견이 없는 이들이 나서서 여론으로 일을 끌어가려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중우정치의 피해도 역사적으로 매우 심각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을 전란 중간에 정파적 이해로 제거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겠는가?

 

2017.12. 1.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