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자유함
용서의 자유함
세상을 살다보면 주변의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로부터의 온갖 종류의 시달림이 매우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원죄(原罪)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겠는데 다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가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인 생애를 살펴보자면 그는 참으로 주변 인물들로부터 엄청난 시달림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주변의 인물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구조차도 그를 거부하고 그에 대해 분개하고 모욕하고 배반하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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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가 비록 죄가 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와 그의 자비로운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기를 원하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참으로 경험 했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자비롭게 사랑하고 용서함으로서 비로소 그의 사랑이 실증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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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인데, 주변 사람들의 죄악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며, 그들의 죄악된 행동 자체는 용서할 수 없고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으나, 그 죄악을 저지른 사람을 위하여 그가 뉘우치고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도록 계속 기도하라는 말이다. 이처럼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랑의 마음을 허락하시고 이로 인해 그의 삶도 변화되는 역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런 기도의 사람은 참 자유와 기쁨의 큰 축복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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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이 바로 세상 다른 종교, 다른 철학과는 다른 점이다. 예컨대, 우리 전래(傳來)의 사상은 자기 부모를 해친 사람과는 영원히 같이 할 수 없다는 증오와 복수의 마음을 가르치는데 이것이 우리사회에도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다고 본다.
우리사회는 내부의 반목과 갈등이 유달리 심한데 이는 우리나라 산천이 매우 척박하고 굴곡이 심한 데에도 원인이 있어 보이나 이처럼 증오를 부축하는 철학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증오는 반드시 또 다른 증오를 불러온다. 오늘날 널리 회자(膾炙)되는 소위 적폐청산을 수행하면서도 반드시 이점을 명심해야한다. 비록 세종대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어도 그처럼 깊은 사랑의 정신을 실천 하셨으니 참으로 놀랍고 오늘날 후손된 우리들은 반드시 깊이 배우고 실천에 옮겨야할 것이다. 실천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2018.12.12.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