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선(善)과 악(惡)의 기로에서

jookwanlee 2018. 12. 8. 16:54

()과 악()의 기로에서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아니면 선과 악이 그 속에 공존하는 존재인가?

 

러시아 문호 도스토엡스키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중적이며 영원히 완결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 사이에서 찢겨져있다. “가슴이 뜨겁고 지혜가 뛰어난 인간도 마돈나의 이상에서 출발하여 소돔의 이상으로 끝을 맺고” “소돔의 이상을 가진 인간도 마음속에서는 마돈나의 이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중성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다움의 표시이기도 하다. 소돔과 마돈나 사이에서, 선과악의 기로에서, 갱생과 파멸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 인간은 한번 태어난 걸로 인생이 완결되는 게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다시 태어난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대왕에게 성학(聖學)에 대해 말하기를, “()을 밝히려는 옛사람이 마음을 바루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는 하였으나, 본심의 착함은 그 체가 지극히 작은 반면 이욕(利欲)이 공격하는 것은 번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성색(聲色) 취미(臭味)와 완호(玩好) 복용(服用)과 토목(土木)을 화려하게 하고 화리(貨利)를 불리는 일이 잡다하게 앞에 나와 거기에 빠지는 것이 날로 심해집니다. 그 사이에 착한 꼬투리가 드러나 마음과 몸이 고요한 때는 대개 열흘 추운 중에 하루 볕 쬐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이 마음을 개발(開發)하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이 마음의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고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겠습니까.”하고 또 말하기를 이른바 그 講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 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알아가고, 미리 생각하여 대책을 세워두도록 하여야 합니다.“하였다. ~ 1653년 효종 472일 상차문 중에서

 

사도 바울(St. Paul)은 이 선과 악 사이에 헤매는 자신의 이중성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18-24)

 

이처럼 우리 속에는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는 것인 만큼 우리 인간은 결코 마음으로부터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죄가 없는 인간은 없다. 사도 바울 같은 성인의 고백을 듣고 또 나 자신의 속사람을 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변명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우리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간들이 죄를 속()하여 구원 받을 길을 여신 것이니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큰 축복인 것이다. 죄 많은 우리가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찾을 길을 여신 것이고 죄악에 빠져 죽을 우리의 생명을 살려주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신 것이다.

 

2018.12. 8. 이 주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