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비전의 길

jookwanlee 2025. 6. 26. 20:18

비전(VISION)의 길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훗날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 인생 전반전에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다져놓고도 하나님의 이 말씀 한마디에 고향을 버리고 미지(未知)의 땅으로 떠난 아브람(훗날 아브라함)의 도전 정신은 참으로 경탄스럽다.

 

하니님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는 명령은 참으로 황당한 것이었다. ‘보여준 땅’도 아니고 ‘보여줄 땅’이다. 요즘처럼 내비게이션도 없고 최첨단 지도도 없다. 그야말로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던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브리서 11장 8절).

 

하나님은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유를 설명하거나 지침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저 “나를 믿고 가라, 그러면 복(福)을 받을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셨을 뿐이다. 그런데도 아브람은 순종했다. 언제, 어디로, 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믿음은 이처럼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 믿고 의지하여 가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證據)니”(히브리서 11장 1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하면 이후에는 엄청난 헌신도 갈등 없이 한다. 아브람은 지체 없이 하나님 명령대로 자신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까지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여 1천 킬로미터가 넘는 험난한 길을 여행하다가 하란에 도착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성경은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몇 년이나 거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비전(vision)의 여정에서 우리를 중단시키는 것은 우리가 익숙하던 옛 사람이나 장소 같은 것들의 기억이다. 그래서 헌신은 하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된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1천 킬로미터나 왔으면 됐지 뭐, 여기 하란이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 이만하면 문제없잖아.”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인간적인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중간 지점인 하란에 주저앉아 있는 아브람을 하나님은 야단치지 않으시고 다시 찾아오신다. 그리고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주셨던 말씀을 다시금 들려주시며 떠나라고 하신다. 말씀을 듣고 아브람은 정신이 번쩍 났다.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주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아브람은 인생길의 중간지점에서 거룩한 모험을 시도했다. 세상의 기준으로 상당히 성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던 바로 그때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다. 이런 고귀한 비전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새롭고 힘든 도전들이 밀려올 것이다. 반드시 먼저 훈련시키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서글픈 인생은 실패가 두려워서 불안한 현실에 안주하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인생일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치 있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약속의 땅으로 떠났던 아브람의 용기와 결단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훗날을 살았던 사도 바울이 위대한 것은 그도 아브라함과 같이 진리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그의 말씀을 듣고 죽기까지 흔들림 없이 그 말씀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장 24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성현(聖賢)과 같은 높은 경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인생길에서 그 어떤 역경과 고난과 좌절이 찾아올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정진해야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인간은 모두 다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경과 고난과 좌절의 체험은 오히려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곤 한다.

영주 부석사

2025. 6.27.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