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분낙도

시민여상

jookwanlee 2024. 12. 29. 08:46

시민여상(視民如傷)

 

“천심(天心)을 닮아 이 인(仁)을 본성으로 간직하니, 몸에 가득한 것은 모두 살리기를 좋아하는 봄뜻이라오. 벽에 써 붙인 여상(如傷)의 글자 보기 부끄러우니, 서(恕)를 미루어 나가려면 우선 차마 못하는 마음 가져야하리라![克肖天心性此仁 滿腔都是好生春 壁間愧視如傷字 推恕須從不忍人(극초천심성차인 만강도시호생춘 벽간괴시여상자 추서수종불인인)]”<우계 성혼 선생, ‘우계집牛溪集)’에서>.

 

우계 성혼 선생은 당시 진주 목사였던 몽응(夢應) 이제신(李濟臣)에게 보낸 시(詩)에서 수령의 지켜야 할 덕목으로 ‘시민여상(視民如傷)’을 강조했는데, 이 시민여상(視民如傷)을 이 시에서는 줄여서 여상(如傷)으로 표현하였다. 시민여상은 『맹자(孟子)』「이루하(離婁下)」의 ‘문왕은 백성들을 볼 때 다친 데가 있지 않은가 걱정하였으나 도(道)를 열망하기를 아직 보지 못한 듯이 하였다[文王視民如傷 望道而未之見].’에서 유래된 말이다. 백성을 사랑하기를 상처 돌보듯이 하는 시민여상(視民如傷)은 본성의 어진 마음[仁]에서 우러난 애민정신(愛民精神)의 지극한 표현으로, 이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인지심(不忍之心)과도 일맥상통한다.

 

참으로 녹록(錄錄)하지 않은 세상살이에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해사하고 밝은 표정과 목소리와 미소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거나 차마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상흔(傷痕)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 입은 상처를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이다.

 

이 상처를 스스로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오히려 산경험이요 참교육으로 받아들임으로 자신의 이해력과 능력을 키우는 경우에는 문제 될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상처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관하고 좌절하거나 아니면 자신이나 이웃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이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위에서 우계 성혼 선생은 유학(儒學)의 가르침을 따라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해(害)가 되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을 지닐 것을 주문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이후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4년(1653년) 7월2일 애민(愛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효종대왕에게 말씀 한 바가 있어 주목된다.

 

“임금이 백성을 대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과 같은데, 자식이 굶주리고 추우면 부모로서 예사로 여기는 자가 있겠습니까. 신은 아직도 경인년(1650년 효종원년) 의 수교(手敎)를 기억합니다. 송(宋)나라 조후(曺后)가 ‘천하에 이롭다면 내가 어찌 머리털이나 피부를 아끼겠느냐’고 한 말을 인용하셨으니, 본말과 경중의 구분을 전하께서 이미 스스로 아셨다고 하겠습니다. 예전에 명(明)나라 인종 황제(仁宗皇帝) 때 봉사(奉使)하고 강회(江淮)에서 돌아온 자가 기근(饑饉)을 말하니, 드디어 강관(江關)의 수백만 섬의 쌀을 내어 구제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사농(司農)과 의논하기를 청하였으나, 인종이 ‘유사(有司)가 걱정하는 것은 경비(經費)이니, 함께 의논하면 일이 시행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선인[宣仁, 송 조후(宋曺后)의 시호]의 마음으로 인종(仁宗)의 정치를 행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이 애민(愛民)의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그보다 앞서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장 37-40절).

 

예수 그리스도의 위의 말씀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되 반드시 하나님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의롭고 도덕적인 방향으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면서 오히려 주변이나 세상에는 악한 영향을 끼치는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4.12.29.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