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감상 : 살신순국 군자왈인(殺身殉國 君子曰仁)
한시감상 : 살신순국 군자왈인(殺身殉國 君子曰仁)
I. 물고기 새와의 깊은 맹약 내 잊지 않았으니(魚鳥深盟吾不負)
··············································································· 한포재 이건명 선생
이붕거가 부쳐 준 시에 급히 차운하다〔走次李鵬擧寄示韻〕
평생 누대 지을 곳 없이 / 生平無地起臺樓
아득한 출처일랑 감류(埳流)에 맡겼는데 / 逝止悠悠任埳流
호외(湖外)에서 우연히 천 리 길 나그네 되어 / 湖外偶成千里客
한가한 중에 헛되이 두 해가 지났네 / 閑中虛度二年秋
장마 속 자상(子桑)에게 누가 안부 물어 주나 / 子桑霖雨人誰問
중울(仲蔚)의 쑥대 덮인 집은 절로 그윽하여라 / 仲蔚蓬蒿室自幽
물고기 새와의 깊은 맹약 내 잊지 않았으니 / 魚鳥深盟吾不負
만년의 마음은 창주에 맡기리 / 襟期歲晩托滄洲
[주-1] 이붕거(李鵬擧)
이정익(李禎翊)으로 자는 붕거(鵬擧), 호는 애헌(崖軒)이다. 1655년(효종 6년)출생 1726년(영조 2년)사망한 문신이다.
[주-2] 평생 …… 없이 :
청렴하게 살았음을 말한 것이다. 북송(北宋) 때의 구준(寇準)이 재상으로 지낸 30년 동안 사저(私邸)를 짓지 않았는데, 처사 위야(魏野)가 구준에게 지어 준 시에 “벼슬은 삼공의 자리 앉았는데 누대 하나 지을 땅이 없구나.[有官居鼎鼐, 無地起樓臺.]” 하였다. 《國老談苑 卷2》
[주-3] 아득한 …… 맡겼는데 :
감(埳)은 구덩이이고 유(流)는 흐름이니, 태평한 시대에는 벼슬을 하고 험난한 시대에는 숨어 산다는 말로, 때에 맞게 나아가고 물러났음을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 권48 〈가의전(賈誼傳)〉에 “흐름을 타면 그대로 가고, 험난한 곳을 만나면 멈춰 선다.[乘流則逝, 遇埳則止.]” 하였다.
[주-4] 호외(湖外)에서 …… 되어 :
기사환국 후에 보령(保寧)으로 내려와 우거(寓居)한 것을 가리킨다.
[주-5] 장마 …… 주나 :
자신을 찾아와 주는 사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자여(子輿)와 자상(子桑)은 친구 사이였는데, 열흘 동안 장맛비가 내리자, 자여가 “자상이 거의 병이 들었을 것이다.” 하고 밥을 싸 가지고 가서 먹이려 하였다. 그 집에 이르자 자상이 노래하듯 곡하듯 금(琴)을 연주하며 자신의 가난한 운명을 한탄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莊子 大宗師》
[주-6] 중울(仲蔚)의 …… 집 :
은자의 가난한 집을 가리킨다. 장중울(張仲蔚)은 평릉(平陵) 사람으로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였는데, 늘 궁핍하게 사는 가운데 쑥대가 자라 사람 키를 넘고 집을 덮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누가 사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高士傳 卷中 張仲蔚》
[주-7] 창주(滄洲) :
은자의 거처를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완적(阮籍)이 지은 〈위정충권진왕전(為鄭沖勸晉王箋)〉에 “창주에 임해 지백(支伯)에게 사례하고, 기산(箕山)에 올라 허유(許由)에게 읍한다.” 하였다. 《文選 卷40 為鄭沖勸晉王箋》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1권 / 시(詩)>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전형윤 황교은 (공역) | 2016
II. 한시감상(漢詩感想) : 살신순국 군자왈인(殺身殉國 君子曰仁)
위의 시는 한포재 이건명 선생이 남인들의 정변인 1689년 기사횐국(己巳換局)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위험을 피해 온가족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보령에 내려가 지내던 암울했던 시절에 지은 시로 “물고기 새와의 깊은 맹약 내 잊지 않았으니(魚鳥深盟吾不負) 만년의 마음은 창주에 맡기리(襟期歲晩托滄洲)”라는 대목에서 충절(忠節)을 향한 본인의 굳은 마음은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변함이 없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굳은 마음은 훗날 그가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목숨을 바쳐 영조대왕을 세움으로서 영조·정조의 중흥의 시대를 연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핵심 인물이 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훗날 그의 이러한 굳은 충절에 대해 정조대왕은 아래와 같이 두 차례나 치제문(致祭文)을 지어 칭송하였다.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 치제문 (1차)
자신의 몸을 죽여 순국함을 / 殺身殉國
군자가 인이라고 하는데 / 君子曰仁
백대에 걸쳐 한 사람이 있으니 / 百世一有
경이 실로 그 사람일세 / 卿實其人
서사의 명을 지니고 떠났는데 / 西槎銜命
북문에 화가 일어나니 / 北門煽禍
음양이 서로 편을 나누어 / 陰陽以類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네 / 玄黃于野
참소하는 사람의 말이 교묘하고 / 讒夫舌簧
진흙을 뒤집어쓴 무리가 설치니 / 負塗躑躅
한 손으로 사직을 부지했음은 / 隻手扶社
곧 누구의 공이던가 / 繄誰之力
천지의 경상(經常)이 / 天經地彝
경의 덕분에 인멸하지 않았으니 / 賴以不湮
태세 알봉이 / 太歲閼逢
마치 어제인 듯하네 / 如隔玆晨
경의 정령이 위로 올라가 / 精爽上升
운향에서 좌우로 행하니 / 左右雲鄕
신이 이름에 / 神之來思
술이 향기롭도다 / 有酒馨香
[주-1]서사(西槎)의 …… 벌어졌네 : 1721년(경종1)에 이건명(李健命)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세제(世弟)의 책봉을 주청 한 후 책봉 주청사(冊封奏請使)로 청나라에 간 동안 국내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가 일어나 소론에 의해 노론이 제거되는 치열한 정쟁(政爭)이 있었음을 두고 말한다.
[주-2]알봉(閼逢) : 고갑자(古甲子)의 갑년(甲年)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영조(英祖) 즉위년인 갑진년을 뜻한다.
충민공(忠愍公) 이건명(李健命)의 묘소에 치제한 글 (2차)
경이 사충 가운데 / 卿於四忠
그 죽음이 더욱 원통했으니 / 其死愈寃
내가 유집을 읽어 보고 / 予讀遺集
분명하여 말할 필요가 없었네 / 判欲無言
생각건대 저 교원에 / 惟彼交原
아직도 벽혈(碧血)이 묻혀 있으니 / 尙有碧瘞
선왕의 일을 생각하면서 / 先王之思
글썽이며 눈물을 떨구네 / 泫然我涕
이 고을에 행차를 멈추고 / 駐蹕玆鄕
묘소 둘레의 나무를 바라보네 / 矧望松檟
무엇으로 심회(心懷)를 풀 것인가 / 何以瀉懷
향기로운 술이 있다네 / 有馨斯斝
[주-1]사충(四忠) : 경종(景宗)의 허약함을 이유로 왕세제였던 영조(英祖)의 대리청정을 추진하다가 소론의 공격으로 역적으로 몰려 화를 당한 노론의 4대신인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健命), 이이명(李頤命), 조태채(趙泰采)를 말한다.
<출처 : 정조대왕, 홍제전서(弘齋全書) 2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