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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노과신백거(謫路過愼伯擧) 귀양길에 신백거의 집을 지나며

jookwanlee 2022. 2. 23. 02:52

적노과신백거(謫路過愼伯擧) 귀양길에 신백거의 집을 지나며

··········································································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

 

千里江南處處花(천리강남처처화) : 천리 강남 곳곳에 꽃이 피어나고

獨憐梅影照孤槎(독연매영조고사) : 외로운 뗏목 배에 매화 그림자 너무 좋아라

今來月出山前路(금내월출산전로) : 눈앞에 보이는 산길로 달 떠오르는데

羞過西湖處士家(수과서호처사가) : 서호 처사 그대 집을 부끄러이 지납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우의정 시절 소현세자빈 강씨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 진도로 귀양 가는 길에 옛 지인인 소은 신천익의 집을 지나며 지은 시로 여겨짐. 백강 선생이 임금을 잘못 계도함으로 인하여 귀양길에 오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지은 시로 매화 꽃 피는 강변의 이른 봄날의 풍경과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매화의 지조(志操)를 사랑하는 고결한 선비의 기풍이 잘 그리어져 있다. 매화의 계절을 앞두고 감상하기 좋은 품격 있는 한시(漢詩)이다.

 

* 신백거(愼伯擧) : 신천익 (愼天翊, 1592~1661)

조선 중기 문신이다. 대사간·이조참의·한성부우윤·이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문장과 시부에 능하여 송시열의 칭송을 받았다.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백거(伯擧)이며, 호는 소은(素隱)이다. 진사시에 입격하고 1612년(광해군 4)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15년 홍문관정자를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다. 그 후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보고는 사직하고 전라남도 영암(靈巖)에 은거하여 정사(精舍)인 영암이우당(靈巖二友堂)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1623년의 인조반정 후 수찬(修撰)·교리·사간 등에 제수되었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 후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대사간·이조참의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1659년에는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종2품 관직에 인물이 부족하다 하여 네 사람을 추천하였는데, 신천익이 그 중 한 사람으로 이조참판에 서임되고, 이어 한성부우윤에 특제(特除)되었다.

문장과 시부(詩賦)에 능하여 송시열의 칭송을 받았으며, 아우 해익(海翊)과 더불어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한편, 관직을 버린 뒤로는 시정(時政)과 시사(時事)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국사(國事)보다 사사로운 일에 더 힘을 기울였다 하여 당시 선비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았다. 영암의 영보사(永保祠)에 배향되었으며, 시문집에《소은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