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백강 이상국에 대한 제문

jookwanlee 2022. 2. 3. 23:28




나라에 어진 정승 있다는 것이 적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네 (國有賢相 敵人之怒)

명재유고 제33권 / 제문(祭文) ~ 명재 윤증 선생 지음
참의 숙부를 대신하여 지은 백강(白江) 이 상국(李相國)에 대한 제문

아아, 우리 백강 상국공께선 / 惟公
한 시대의 노성한 숙덕이셨고 / 一代耇德
두 조정에 상공을 지내셨으니 / 兩朝元輔
나라에 있어서는 중요한 원로 / 國家龜蓍
사림에 있어서는 종주셨다네 / 士林宗主
나이와 덕과 지위 겸유한 데다 / 三尊備有
오복까지 아울러 갖추셨나니 / 五福兼具
시작이 좋았는데 끝도 좋아서 / 善始令終
참으로 짝할 이 별로 없어라 / 允矣寡伍
청렴함과 공손함은 본래의 성품 / 廉恭素性
분명함과 엄준함은 타고난 천성 / 淸峻天賦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의 갖추고 / 溫溫儀表
강직하고 당당한 도량 지녔네 / 侃侃器度
옥이 묻힌 산 절로 윤기 흐르고 / 玉蘊山腴
진주 품은 연못이 아름다운 법 / 珠藏澤嫵
찬란하게 빛났던 성덕군자여 / 有斐君子
세상에 다시 보기 쉽지 않으리 / 世難復覩
젊은 시절 재능이 출중하여서 / 弱齡蜚英
봉황지 연못 위에 날개 폈어라 / 池上鳳羽
그때 마침 혼탁한 군주가 있어 / 適丁昏濁
윤리와 강상이 다 무너졌었지 / 倫常滅斁
몸을 깨끗이 하려고 떠나가면서 / 潔己自疏
미혹과 두려움이 전혀 없었네 / 不惑不懼
공은 그런 뜻을 견결히 지켜 / 厥守貞固
확고한 경지를 수립하였지 / 肇有所樹
도가 다시 흥성하는 시절이 오자 / 中興道泰
뛰어난 인재들이 줄을 이었고 / 俊乂接武
공도 다시 나와서 능력 발휘해 / 才猷奮庸
두터운 신망을 받게 되었지 / 雅望歸注
내직을 맡았을 땐 차분하였고 / 從容省闥
외직에선 편안히 다스렸는데 / 奠釐藩土
판단력과 감식안이 매우 신묘해 / 機神鑑朗
내외에서 모두 다 여유로웠네 / 外內咸裕
저 명승지 부여를 돌아보면은 / 睠彼名區
백마강 강가에 자리했는데 / 白江之滸
뜻을 품고 과감히 물러 나와서 / 志懷勇退
그곳에서 송백지조 굳게 지켰네 / 以保歲暮
한적한 강 대숲에 자리 잡으니 / 水竹靜散
마음이 편안하고 담박하였지 / 襟靈恬素
세상이 공 버린 게 아니었으며 / 世莫公捨
내 실로 마음으로 사모했어라 / 我實心慕
만년에 조정의 부름에 응해 / 晩膺天祿
삼공의 반열에 오르게 됐네 / 百揆三府
그러다가 갑자기 견책을 받아 / 俄承恩譴
찬 변방 험한 섬에 귀양을 갔지 / 氷塞瘴浦
총애와 오욕이 번갈아 와도 / 寵辱迭來
공은 전혀 일희일비하지 않았네 / 公罔喜怖
안색이 변함없이 건강했던 건 / 髭髮無改
신명이 도와주고 보호해서지 / 鬼神扶護
명철한 군주가 선대 뜻 이어 / 聖明繼志
크나큰 은택을 두루 미쳤네 / 霈澤斯溥
공을 다시 영상에 복권시켜서 / 復我袞舄
교화의 책임을 부여했기에 / 畀以陶鑄
세상의 험한 일 모두 겪은 뒤 / 險塗旣盡
대업을 바야흐로 행하게 됐네 / 大業方措
공정함 견지하여 안정시킨 건 / 秉公鎭物
급암과 위징이 남긴 법이지 / 汲魏遺矩
나라에 어진 정승 있다는 것이 / 國有賢相
적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네 / 敵人之怒
초연히 벼슬자리 내어놓고서 / 超乎無位
담담히 초막으로 내려갔었지 / 淡然環堵
임금을 잊지 않는 충심 있는데 / 忠不忘君
의리상 어찌 문을 닫고 지내랴 / 義豈閉戶
임금에게 상소를 자주 올려서 / 囊封亟上
지성스러운 마음을 아뢰었다네 / 款款肺腑
문무 관원 모두에게 모범이 됐고 / 文武模楷
군신 상하 공을 굳게 의지하였지 / 上下倚固
공께서 백 년 동안 장수를 누려 / 謂當百年
길이 명성 떨치리라 생각했는데 / 以永終譽
치사(致仕)하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 告老未幾
어찌 그리 갑자기 세상 버렸나 / 騎箕何遽
하늘이 공을 급히 데려갔으니 / 天實不憖
이 나라 장차 누굴 의지할거나 / 國將誰怙
공의 목숨 병으로 위태로워도 / 公病已危
한마음 나라 위해 괴로워했네 / 一心猶苦
유소를 남기어 충성 다하니 / 遺疏畢忠
성상의 유지 더욱 애틋하였고 / 益愴聖諭
죽음을 애도하고 예우하는데 / 隱卒崇終
그 애도와 영예가 남달랐었지 / 哀榮異數
조야가 부음 듣고 다 슬퍼한 건 / 朝野驚惋
사적인 인연 때문이 아니었다네 / 非私之故
아아, 보잘것없는 나 같은 이도 / 嗟余無似
그 덕의 도량 안에 놓여 있었지 / 辱在德宇
인척이란 인연으로 연결이 되어 / 憑緣契誼
마침내 공의 우대 크게 받았네 / 遂荷獎遇
나란 사람 편협하고 혼우하기에 / 褊滯昏謬
하나도 취할 만한 능력 없는데 / 一無足取
공이 나를 임금께 천거했으니 / 至玷薦剡
내 실로 공의 명성 그르쳤다네 / 我寔公誤
먼젓번에 묘갈을 돌에 쓰는 일 / 先碣書石
외람되이 부탁을 받았었는데 / 猥蒙見付
간곡히 거절해도 안 되겠기에 / 懇辭不獲
내 노둔한 재주를 다하였으나 / 勉竭拙魯
마음과는 다르게 병이 심해져 / 病與心違
결국에는 그 일을 완성 못했네 / 竟未仰布
유명 간에 저버린 게 부끄러울 뿐 / 幽明愧負
공의 은혜 갚을 길은 전혀 없어라 / 報公無路
고질병 극심한데 못 죽는 이 몸 / 恒疾不死
두 다리는 칼을 씌워 놓은 것 같네 / 兩足如錮
지엄하신 소명이 이어지는데 / 尙勤嚴召
사직을 청하는 게 일이 되었네 / 坐事祈籲
이런 죄를 짓고는 살 수 없으니 / 孼不可活
차라리 잠이 들어 깨지 않기를 / 寐寧無寤
생전에 알아주신 생각 해 보면 / 追惟知照
이리 병든 내 신세 애처롭다네 / 尙矜癃痼
교하(交河)에 솟아 있는 월롱산 아래 / 月籠之下
공이 가서 묻히실 무덤 있는 곳 / 公歸有所
큰 새처럼 거기 가 울지 못하고 / 情慙大鳥
솜 적신 술 들고 가지 못하네 / 迹阻漬絮
그 대신 제문에다 슬픔을 담아 / 緘辭寫哀
한 잔 술 멀리에서 부치옵나니 / 一觴遠寓
밝고 밝아 신령한 영령이시여 / 英靈不昧
부디 흠향하시고 살펴 주소서 / 庶我歆顧

[주-D001] 참의 숙부 :
윤문거(尹文擧, 1606~1672)를 말한다. 이경여(李敬輿, 1585~1657)가 죽은 해에 윤문거가 이조 참의에 제수되었으므로 참의 숙부라고 한 것이다.
[주-D002] 백강(白江) 이 상국(李相國) :
이경여로, 백강은 그의 호이다. 자는 직부(直夫),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주-D003] 젊은 …… 폈어라 :
봉황지(鳳凰池)는 중서성(中書省)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는 이경여가 1609년(광해군1)에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檢閱)이 된 것을 말한다.
[주-D004] 그때 …… 없었네 :
광해군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키는 등 실정을 거듭하자, 이경여는 1619년(광해군11)에 벼슬을 버리고 떠나 흥원강(興元江) 가에 우거하였다.
[주-D005] 만년에 …… 됐네 :
청(淸)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642년(인조20)에 이경여는 청나라로 잡혀가 심양에 구류되었다가 그 이듬해 세자와 함께 환국하여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이 된다.
[주-D006] 그러다가 …… 갔지 :
1646년(인조24)에 이경여가 소현세자빈 강빈(姜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한 일로 삭탈관직되고 문외출송당하였다가 진도(珍島)에 위리안치되었고, 이어 1648년에 삼수(三水)에 이배(移配)되었다. 여기에서 얼어붙은 찬 변방은 삼수를 말하고 장독(瘴毒)이 있는 험한 섬이란 진도를 가리킨다.
[주-D007] 명철한 …… 부여했기에 :
1649년(인조27)에 인조가 승하한 뒤 이경여가 아산(牙山)으로 옮겼다가 1650년(효종1)에 석방되어 돌아와 영의정에 제수된 것을 말한다.
[주-D008] 급암(汲黯)과 위징(魏徵) :
급암은 한 무제(漢武帝) 때의 직간(直諫)으로 이름 높은 신하이고 위징은 당 태종(唐太宗) 때의 현명한 재상이다.
[주-D009] 나라에 …… 내려갔었지 :
1651년에 청나라 사신의 압력으로 이경여는 영의정 자리를 떠났고, 1654년에 청나라 사신이 다시 문제 삼자 영중추부사 직을 버리고 물러나 충주(忠州)로 내려갔다.
[주-D010] 유소(遺疏)를 …… 애틋하였고 :
이경여가 1657년(효종8)에 73세를 일기로 명례동(明禮洞) 집에서 졸하자, 자손들이 곧바로 유소를 올렸다. 유소는 임금이 경계해야 할 항목을 들어 설파하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대해 효종은 “가르침이 더없이 절실하고 내용이 깊은 데다 간절한 정성이 말에 넘쳐흐르니, 더욱 슬퍼서 마음을 진정할 수 없다. 어찌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孝宗實錄 8年 8月 8日》
[주-D011] 인척이란 …… 받았네 :
이경여의 둘째 아들 이민적(李敏迪)이 숙부인 이정여(李正輿)에게 입양되는데, 그 양어머니가 바로 윤황(尹煌)의 딸이다. 따라서 윤문거는 이민적에게 외삼촌이면서 또 사제지간이었으므로 이경여가 윤문거를 남달리 예우하였다. 《陶谷集 卷10 大司憲竹西李公神道碑銘, 韓國文集叢刊 181輯》
[주-D012] 공이 …… 그르쳤다네 :
윤문거는 1651년 7월에 동래 부사가 되었다가 그다음 해에 관왜(館倭)의 난동으로 파직된다. 그러나 1653년(효종4)에 이경여의 천거로 다시 서용의 명이 내리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주-D013] 큰 새처럼 …… 못하고 :
후한(後漢) 때의 사도(司徒) 양진(楊震)이 간신의 모함을 받은 일로 음독 자살하였는데, 장례를 지내기 10일 전에 큰 새가 날아와 슬피 울다가 안장을 마치자 날아갔다고 한다. 《後漢書 卷54 楊震列傳》 여기서는 병으로 인해 직접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D014] 솜 적신 …… 못하네 :
척계지서(隻鷄漬絮)의 고사이다. 후한 때의 서치(徐穉)는 먼 곳에 문상(問喪)을 갈 때 솜에 술을 적시고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 가지고 갔는데, 빈소에 도착해서는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구운 닭과 함께 상에 올린 뒤에 문상을 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53 周黃徐姜申屠列傳》 이 구절 또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기찬 (역) |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