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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학지교가이영세(惟文學之交可以永世)

jookwanlee 2020. 1. 22. 12:04

유문학지교가이영세(惟文學之交可以永世)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인생은 곧 만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만남을 통하여 자신과 이웃을 행복하게도하고 불행하게도 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온갖 만남이 있는데, 그런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성숙하고 사람다워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릇된 만남이 너무 많다. 그런 잘못된 만남의 핵심은 서로 욕심을 품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만남이며, 우정도 이러할 수가 있다. 이런 만남에서는 서로가 상처받게 되고 불안하게 되며 지치게 되고 결국은 멀어진다.

 

바둑과 장기로 사귄 관계는 하루도 못 가고 권력과 이익으로 사귄 관계는 1년을 못 가고 오로지 문학으로 사귄 관계만이 영원할 수 있다 [博奕之交不日 勢利之交不年 惟文學之交可以永世]” 이 말은 장혼(張混, 1759~1828) 이란 분이 옥계사 수계첩 뒤에 쓰다[書玉溪社修禊帖後]에서 밝힌 자기의 생각이다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2020. 1.22.자에서).

 

여기 문학(文學)이란 말은 단지 좁은 의미에서의 문학을 넘어서 인간 정신과 영혼의 영역을 뜻한다고 해석하고자 하며 이런 정신과 영혼의 세계에서 상호간에 공감과 일치를 보아야 두 사람의 교분은 영원히 이어질 수가 있다. 즉 벗으로서의 그 우정이 영원하려면 인생살이에서 뜻 한바 인생관과 가치관이 서로 통해야할 것이며 또 그들의 행실로도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경지로 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영원한 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조선시대 명문가문의 혼인인맥을 살펴보면 이런 높은 수준의 교감에 이르러서 비로소 당대는 물론 대()를 이어 계속적으로 혼사(婚事)를 이어갔음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유학(儒學)에서는 조상의 원수는 절대 같이는 지낼 수가 없다고 가르치니 더욱 그러하였다.

 

기독교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행실을 공유할 경우에 이르러 서로 영원까지 같이 갈 형제로 보고 보다 돈독한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영혼이 있는 가장 차원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정신과 영혼의 세계에서 서로 공감하지 않는 관계는 생명력이 적거나 없게 마련인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실존적 교제라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순수한 혼과 혼이 아무런 이권이나 거래관계 없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요구도 이권도 없이 마냥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은 서로를 치유하여주고 행복하게 이끌어주며 그 교분이 영원히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물론 이러해야하며, 예수를 통한 타인들과의 만남도 이러한 순수한 혼과 혼의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들과 예수를 통한 만남과 같은 실존적 만남을 통하여 서로가 성숙하고 행복해지며 영원한 교분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불교인들도 같은 뜻과 행동으로 부처님을 만나야 할 것으로 생각되며, 유교인들도 같은 생각과 행실로 공자나 탁월한 유학자이기도 하셨던 세종대왕을 만나야할 것이다.

 

특히 나아가 우리 모든 국민은 세종대왕이 대가(代價)없이 백성을 깊이 사랑하셨던 것을 본받아 모든 이웃을 사랑하기를 배워 영원히 서로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자!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우리나라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2020. 1.22. 이 주 관